안전공학과에 입학하고 나서 처음으로 보호구 관련 수업을 들을 때까지만 해도 안전화는 그냥 발을 보호하는 튼튼한 신발 정도로 생각했습니다. 발가락 부분에 철심이 들어있고, 밑창이 두껍고, 못이 박혀도 안 뚫리면 좋은 안전화라고 당연하게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수업에서 안전화 등급 기준표를 처음 봤을 때 제 생각과는 조금 틀리단 걸 알게되었는데요. 안전화는 단순히 튼튼한 신발이 아니라 현장의 위험 종류에 따라 세분화된 보호 기능을 가진 장비였습니다. 그리고 잘못된 등급의 안전화를 신으면 신지 않은 것보다 나을 수는 있어도 필요한 보호를 받지 못하는 상황이 생깁니다. 이번 글에서는 안전화 등급이 왜 나뉘는지, 현장마다 왜 다른 안전화가 필요한지를 정리해봤습니다.
안전화 등급이 나뉘는 이유
한국산업표준(KS)과 안전인증 기준에 따르면 안전화는 등급에 따라 보호 성능이 다르게 규정돼 있느넫요. 안전화 등급은 크게 발가락 보호 성능, 밑창 관통 저항 성능, 발등 보호 성능, 절연 성능, 내화학성 등의 조합으로 결정됩니다.
수업 시간에 교수님이 이렇게 설명하셨습니다. “현장에서 발생하는 위험이 다 다른데 한 종류의 안전화가 여러가지 유형의 위험을 막아 줄 수가 없다. 무거운 자재가 떨어지는 현장, 못이 깔린 현장, 감전 위험이 있는 현장, 화학물질을 다루는 현장에서 필요한 보호 기능이 전부 다르다.” 그 말을 듣고 나서 등급 구분이 왜 필요한지가 이해됐습니다.
안전화의 주요 보호 성능을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이렇습니다.
발가락 보호 기능은 안전화의 가장 기본적인 기능이며 선심이라고 부르는 금속 또는 비금속 캡이 발가락 부분을 보호합니다. 등급에 따라 선심이 견뎌야 하는 충격 하중과 압박 하중이 다르게 규정됩니다. 무거운 자재를 자주 다루는 현장일수록 높은 등급의 선심이 필요합니다.
밑창 관통 저항 기능은 못이나 날카로운 금속 파편이 밑창을 뚫고 올라오는 걸 막아주는 성능입니다. 건설 현장 바닥에는 못, 철근 조각, 날카로운 금속 파편이 널려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 기능이 없는 안전화를 신고 그런 환경에서 작업하면 밑창이 관통되는 사고가 날 수 있습니다.
절연 기능은 전기 작업이나 감전 위험이 있는 환경에서 필요합니다. 일반 안전화는 밑창에 도전성 소재가 포함된 경우가 있어서 전기 작업 환경에서 오히려 위험할 수 있습니다. 절연 안전화는 밑창과 갑피 모두 절연 소재로 만들어져 감전 위험을 줄여줍니다.
내화학성 기능은 화학물질을 다루는 현장에서 필요합니다. 일반 안전화 소재는 강산이나 강알칼리에 노출되면 빠르게 손상됩니다. 내화학성 안전화는 화학물질에 의한 소재 침식을 견딜 수 있도록 특수 소재로 제작됩니다.
현장마다 필요한 안전화가 다른 이유
안전화 등급을 이해하고 나면 현장 종류에 따라 필요한 안전화가 왜 다른지가 명확해집니다.
건설 현장에서는 발가락 보호와 밑창 관통 저항 기능이 가장 중요합니다. 철근, 콘크리트 블록, 자재가 발 위로 떨어질 위험이 크고, 바닥에 못이나 날카로운 파편이 산재해 있는 경우가 많기 때문입니다. 발가락 보호 성능이 높은 등급의 안전화에 밑창 관통 저항 기능이 반드시 포함돼야 합니다. 이 밑창 관통 사고에 대한 예시 자료로 아래의 영상을 첨부해봤습니다. 건설 현장에서의 안전화를 중점적으로 이야기하는 내용이니 참고하시길 바랍니다.
전기 공사 현장에서는 절연 기능이 추가로 필요합니다. 일반 건설 현장용 안전화를 전기 작업 구간에서 신으면 감전 위험이 생깁니다. 절연 안전화는 발가락 선심도 비금속 소재를 사용해야 합니다. 금속 선심이 있으면 절연 기능이 의미가 없어지기 때문입니다.
화학 공장이나 도장 작업 현장에서는 내화학성 기능이 핵심입니다. 유기용제나 산성 물질이 바닥에 있는 환경에서 일반 안전화를 신으면 소재가 빠르게 손상되고, 손상된 안전화는 보호 기능을 잃습니다. 내화학성 안전화는 일반 안전화보다 가격이 높지만 해당 환경에서는 선택이 아닌 필수입니다.
용광로나 고온 작업 환경에서는 내열 기능이 필요합니다. 일반 안전화 밑창은 고온에서 녹거나 변형될 수 있습니다. 내열 안전화는 밑창이 고온을 견딜 수 있는 특수 소재로 제작됩니다.
잘못된 안전화가 만드는 위험
산업위생 수업에서 보호구 관련 사고 사례를 분석할 때 안전화와 관련된 내용이 여러 건 있었습니다. 공통점은 안전화를 신고 있었지만 해당 환경에 맞지 않는 등급이었다는 겁니다.
전기 작업 현장에서 일반 안전화를 신고 작업하다가 감전 사고가 난 사례, 화학 물질 취급 현장에서 내화학성이 없는 안전화를 신다가 밑창이 손상되면서 화학물질이 발에 닿은 사례, 못이 많은 구간에서 밑창 관통 저항 기능이 없는 안전화를 신다가 못이 발을 관통한 사례가 있었습니다.
이런 사고들을 통해 꼭 상황과 환경에 맞는 안전화를 골라 착용해야 한다는 것을 마음속 깊이 명심해주세요.
안전화 선택 전에 확인해야 할 것들
올바른 안전화를 선택하기 위해서는 작업 환경에서 발생할 수 있는 위험 종류를 먼저 파악해야 합니다. 중량물 취급 여부, 날카로운 파편 존재 여부, 전기 작업 여부, 화학물질 취급 여부, 고온 환경 여부를 확인하고 그에 맞는 보호 기능을 가진 안전화를 선택해야 합니다.
안전화에는 인증 마크와 등급 표시가 있습니다. 안전인증 마크와 함께 보호 기능을 나타내는 기호가 표시돼 있습니다. 구매 전에 이 표시를 확인하면 해당 안전화가 어떤 기능을 갖추고 있는지 알 수 있습니다.
안전화도 안전모처럼 수명이 있습니다. 밑창이 닳거나 선심 부분이 변형된 안전화는 보호 성능이 떨어집니다. 겉이 멀쩡해 보여도 밑창이 딱딱해지거나 갑피 소재가 갈라지기 시작하면 교체를 고려해야 합니다. 절연 안전화는 절연 성능이 저하될 수 있으므로 정기적인 절연 성능 점검이 필요합니다.
마무리하며
안전화는 하루 종일 발에 신고 있는 장비입니다. 그만큼 현장 환경에 맞는 올바른 선택이 중요합니다. 아무 안전화나 신으면 된다는 생각, 안전화를 신고 있으니 괜찮다는 생각이 오히려 사고 확률을 높인다고 생각해요.
작업 환경을 먼저 파악하고, 그에 맞는 보호 기능을 가진 안전화를 선택하는 것, 그리고 손상된 안전화는 제때 교체하는 것이 발을 지키는 가장 기본적인 방법입니다. 발 하나를 잃으면 평생이 불편해집니다. 안전화 선택에 조금 더 신경 써주세요.